진흙을 나르는 동고비
청소를 모두 마치고 나더니 예상대로 진흙을 나르기 시작합니다. 한 쪽은 잘 다져진 콩알 크기의 진흙을 물어오고 다른 한 쪽은 둥지가 잘 보이는 맞은 편 나무에 앉아 경계를 섭니다. 3월 초면 늘 그러기 쉽지만 더군다나 봄 가뭄이 심한 때입니다. 진흙을 구할 곳이 마땅치 않을 것인데 5분 정도의 간격으로 잘 다져진 콩알 크기의 진흙을 잘도 물어옵니다. 주변에 저수지는 물론 논과 밭도 없으니 진흙을 가져 올 곳이 있다면 계곡 주변뿐입니다. 진흙을 위해 오가는 동선이 항상 같기에 따라 가보니 물은 거의 흐르지 않지만 작은 계곡이 있습니다. 바위 뒤로 몸을 숨기고 위장을 한 채 지켜보았더니 정말 계곡 주변의 진흙을 부리로 떼어내 머리를 움직이며 몇 번 굴려 다진 뒤 물고 가는 것이 보입니다. 동고비들이 가장 먼저 이곳의 둥지를 두고 그리 각축전을 펼쳤던 이유는 아마도 이 둥지가 진흙을 구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동고비가 둥지를 지으며 역할분담을 하는, 정확히는 해야만 하는 이유가 짐작이 됩니다. 딱따구리의 옛 둥지에 어떤 식으로 진흙을 붙여 자신의 둥지로 만들지 아직 알 수 없으나 어찌되었든 진흙을 붙이려면 구멍 안으로 고개를 넣어야 할 터이니 등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살필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누군가 반드시 경계를 서주어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몇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한 쪽은 후방에 대한 염려 없이 둥지를 짓는 일에 전념하고 다른 한 쪽은 둥지를 짓는 쪽을 지켜주는 역할분담의 체계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어 보이는데, 이들은 실제 그리 하고 있습니다. 경계를 서는 쪽은 계속 소리를 내줍니다. 뒤는 내가 잘 보고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둥지를 지으라는 뜻일 것입니다. 둥지를 짓는 쪽도 소리가 들리는 한 후방에 대해 특별히 걱정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아는 듯합니다.
여기에서 누가 암컷이고 누가 수컷이냐 하는 것이 궁금해집니다. 경계를 서는 일과 둥지를 짓는 일을 암수가 확실히 나누어서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경계를 서는 일은 수컷의 몫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진흙을 나르는 친구는 자연히 암컷이 됩니다. 그리고 둥지를 짓는 일이 결국 알을 낳아 키울 공간을 만드는 일이니 암컷이 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진흙을 나르는 일이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암컷은 산란을 앞두고 몸도 무거워 질 것을 생각할 때 암컷이 진흙을 나르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기도 한 것입니다. 우선 이 정도의 가능성을 두고 더 살펴보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어 보입니다.
남북으로 뻗은 산책로에서 북쪽을 보고 서 있을 때 둥지가 있는 나무는 오른쪽 곧 동쪽에 서 있고, 경계를 서는 나무는 왼쪽 곧 서쪽에 있습니다. 그리고 둥지의 입구는 서쪽을 향해 있습니다. 또한 진흙을 가져오는 계곡은 서쪽에 있으므로, 둥지를 나서 방향을 바꾸지 않고 똑바로 날아가면 경계를 서는 나무를 지나 계곡에 이르게 됩니다.
진흙을 가지러 갈 때 둘이 함께 갈 때가 많습니다. 먼저 둥지를 짓는 쪽이 둥지를 나서 경계를 서는 나무를 지나 계곡 쪽으로 향하면 경계를 서던 쪽도 계속 소리를 내며 뒤따라갑니다. 하지만 진흙을 가지고 올 때는 경계를 서는 쪽이 먼저 옵니다. 둥지 입구로 먼저 와 주위를 살피고 있다가 진흙을 가져온 쪽이 둥지에 이르면 맞은 편 경계를 서는 나무로 이동하기도 하고, 아예 처음부터 경계를 서는 나무로 먼저 와 둥지 입구에 위험한 요소가 없는지 챙겨주기도 합니다. 더러 진흙을 가져오는 쪽 혼자 다녀올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경계를 서는 쪽은 둥지 입구로 와서 둥지를 지키다가 진흙을 몰고 온 쪽이 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경계를 서는 쪽은 계속해서 소리를 내주는 것은 잊지 않습니다. 목이 온전할지 모르겠습니다. 둥지에서 계곡까지는 50미터 정도의 거리로 급경사이며 둥지가 있는 나무는 높은 곳에 있고 계곡은 낮은 곳에 있습니다. 날아다니지만 진흙을 물고 오기에 가까운 거리는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지 진흙을 물고 바로 둥지로 오지는 않습니다. 항상 경계를 서는 나무 또는 그 주변의 나무에 잠시 앉아 물고 날아오는 동안 흐트러진 진흙을 다시 잘 추스른 뒤 둥지로 옵니다. 진흙을 다시 추스르는 높이는 딱 둥지의 입구 높이입니다. 계곡의 경사를 따라 오다가 솟구치듯 둥지와 같은 높이로 올라와 진흙을 다시 다진 뒤 직선으로 둥지를 향해 이동합니다. 둥지 입구에 와서도 그냥 진흙을 붙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둥지의 입구를 잘 보면 아래쪽 중앙에 작은 홈이 있는데 그 곳에 대고 진흙을 굴려 점도를 조절한 뒤에 붙입니다. 진흙은 하루에 100번 정도 가져옵니다.
진흙을 나르는 동고비가 진흙에 보이는 애정은 정말 눈물겹습니다. 가끔 둥지 입구까지 가져온 진흙을 실수로 떨어뜨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유낙하 하는 진흙을 기어이 뒤따라가 땅에 닿기 전에 곡예를 하듯 공중에서 낚아챕니다. 만약 공중에서 잡지 못하고 놓쳐 땅에 떨어지면 덤불 사이를 헤쳐서라도 끝내 찾아 다시 둥지로 가지고 옵니다. 하지만 그토록 애지중지 하는 진흙도 그냥 툭 버릴 때가 있습니다. 내 눈에는 온전해 보이는 데도 말입니다. 아무리 애써 가져왔어도 가져 와 보니 둥지를 짓는 용도에 맞지 않는 진흙이라면 미련 없이 버릴 줄도 아는 것입니다.
둥지를 짓는 시간이 흘러 둥지의 모습이 조금씩 갖춰짐에 따라 진흙을 가지러 계곡으로 향하는 방향이 바뀌며 가져오는 진흙의 성질도 조금씩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흙이라고 다 같은 진흙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둥지를 짓는 시기에 따라 진흙의 구체적인 성분도 시기에 적절한 다른 것을 가져오는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진흙만을 가져오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끼나 풀뿌리가 섞여 있는 진흙을 가져옵니다. 이끼와 풀뿌리의 용도는 우리가 황토로 집을 지을 때 황토가 더 잘 굳도록 옥수수 줄기나 볏짚을 잘라 섞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지구상에 출현한 시기로 보면 현재의 모습을 갖춘 조류는 중생대 백악기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대인은 신생대 제4기의 현세에 출현합니다. 새는 인간보다 비교도 되지 않는 시간을 앞서 이 지구상에 이미 존재하며 집을 짓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집을 짓는 방법으로 택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새가 집을 짓는 과정을 보고 배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풀뿌리가 많이 섞여 있는 진흙을 물고 온 동고비










감어인님이 작성하신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