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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그 실현 방안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과학기술인 윤리강령』에서 제시된 것과 같은 원칙론과 현실적인 제약들을 조화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인문학이나 사회학의 경우처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분야에서는 어디서부터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그러나 정답을 당장 마련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보다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여기서는 이러한 시도를 세 가지 차원에서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연구자 개인의 차원이다. 연구자는 다양한 교육과 개인적 성찰을 통해 현대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자신의 연구와 사회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연구 자체를 대상화시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또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각종 제도와 원칙이 확립될 필요가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논의가 진행되어 온 과학기술 분야에서 먼저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전문 분야들의 연구가 가지는 사회적 함의에 대한 사회 전체의 새로운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사회가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수동적으로 받아 이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력에 대해 보다 능동적인 자세로 수용하고 평가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연구자들의 역할을 충분히 인정하고 동시에 그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분위기를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1) 연구자 자신에게 요구되는 통찰

연구자은 전문직 종사자로서 일반인들이 모르는 지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 지식기반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연구자들의 지식이 전공분야에만 한정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 전체를 자신의 연구와 연결시켜 바라보는 관점을 기를 필요가 있다.

① 윤리적 주체로서의 연구자

우선 중요한 것은 연구자 자신이 스스로를 윤리적 주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연구자는 자신이 수행하는 연구 및 개발과 연관해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들을 연구 자체와 분리하는 대신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학문의 자율성이나 지식사회의 구조의 일부일 뿐이라는 무력감에 의존하여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애써 무관심하려는 태도가 연구자들 사이에 상당할 정도로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문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은 흔히 자신들이 순수한 학문 활동을 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연구는 윤리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사회학자들과 공학자들은 자신들의 역할은 현상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거나 주어진 조건 내에서 최상의 효율성을 가지는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지 그 연구가 초래할 수 있는 간접적인 영향들에까지 신경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이미 학문세계 내부로부터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과학연구에서도 환경오염이나 생명윤리 등과 관련된 규제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으며, 공학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인문학에서도 연구비 수주 여부에 따라 연구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가장 잘 부응하는 방법은 연구자 개개인이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사회적 책임을 개인보다 단체에게 돌리려는 시도도 있다. 이러한 시도는 과학기술인 본연의 임무가 개인적 차원이 아닌 집단의 차원에서 완성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동시에 윤리적 책임의 소재를 모호하게 할 뿐 아니라 윤리적 주체로서의 과학기술인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법률가나 의사, 종교인, 교사 등은 엄격한 도덕적 기준으로 평가하면서 과학기술인은 특별히 난감한 위치에 놓인 전문인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현대기술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설사 모든 문제들에 대한 책임을 개별 과학기술인에게 물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사회적 책임에 관한 한 과학기술인 개인은 윤리적으로 무능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 인류의 미래가 과학기술에 달렸다면 그 과학기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인문학의 경우에 학자가 사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사회가 인문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국가의 정신세계를 다듬고 심화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태도가 연구자 개인의 만족을 위한 연구를 국가가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 태도로 이어지는 것은 곤란하다.

② 개별 연구 개발의 맥락에 대한 이해

과학기술인들은 자신의 연구 및 개발 프로젝트를 기술발전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많은 경우 과학기술의 연구개발 과정에서는 지나친 분업이 이루어져 과학기술인 개인은 자신이 맡은 부분에는 전문가이면서도 자신이 수행하는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결과가 큰 틀에서 어떤 식으로 사용되고 연계되는지 모르거나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현대 과학기술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분업 자체에 대한 재고가 이루어지기는 어려우나, 과학기술인들이 전체 맥락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작업을 이해해야 한다. 적어도 일반 시민보다는 좀 더 분명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만 관련된 사회적 결과에 대해 전문가로서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리고 적절한 조언을 줄 수 있다.

사회학의 경우에 여러 가지 조사를 통해 사회의 여러 측면들을 분석하게 되는데, 이 때 내려지는 결론이 가지는 엄중한 결과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사회학적 통계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보다는 호도하기 위해서 연구결과를 조작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결국 연구자 자신의 책임감과 도덕성이다.

③ 학술연구의 간접적 영향에 대한 이해와 좋은 세상에 대한 숙고

사회적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해서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가 초래할 직접적 영향 뿐 아니라 간접적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인이 자신의 연구 결과가 환경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자신의 연구가 장기적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에 대해 미칠 영향들에 대해 고려하는 것은 인문학자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과학기술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 고려되어야 하고, 그 간접적 영향에 연구가 인문학에서 이루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좀 더 확대시킨다면, 연구자 자신이 추구하는 ‘좋은 세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숙고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숙고는 아름다운 공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설사 실제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생각은 현재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를 평가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물론 이 때 좋은 사회의 상은 단순히 ‘모든 병든 이가 치료되는 사회’나 ‘모두가 비판적, 반성적 사고를 하는 사회’와 같이 단편적이건 막연한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다양한 부분들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나온 총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연구자는 자신이 그리는 좋은 사회의 이상을 다른 연구자의 생각 및 사회 전체의 견해와 끊임없이 비교하고 소통함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성숙시켜 갈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나 개발 프로젝트를 이러한 이상에 비추어 정당화하고 열린 대화를 통해 토론할 수 있다면 특정 연구가 초래할 수도 있는 사회적 해악을 최소화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은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추구하는 가치의 모호성’을 극복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외적 조건도 갖추어질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인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출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교육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고, 무조건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을 강제하는 사회적 여건들이 변화해야 한다. 인문학자들에게는 급격한 사회의 변화를 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2) 제도 및 원칙의 확립 - 과학기술분야를 중심으로

개별 연구자들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을 한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상황에 부딪쳤을 때 올바르고 적절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관련 제도와 원칙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특별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책임의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대부분 연구자가 속한 단체나 연구를 지원하는 기관이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갈등이 생기는 경우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 어떠한 순서와 방법을 따를 것인가에 대한 일정한 규칙이 필요하다. 다음에서 제시되는 제도와 원칙들은 연구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들이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미흡한 부분이 많으나, 현재 여러 가지 차원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빠른 시일 안에 확립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제도들은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이 단순히 개인적 덕성의 고양 뿐 아니라, 객관적인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사회적 책임의 제도적 장치들은 주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므로, 과학기술분야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도록 한다.

① 의무의 상충과 내부 고발자 보호

과학기술인이 사회적인 책임을 감당하기 힘든 대표적인 이유는 피고용인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임무가 본인이 생각하는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다. 원자폭탄의 예는 가장 극단적인 경우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종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제품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안전성이 떨어지는 부품을 사용하게 되거나, 장기적으로 환경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을 사용하면서도 사용 후의 적절한 처리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실험연구팀에서 일하는 것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경우에 과학기술인 개인은 자신이 속한 팀이나 자신을 고용한 기업에 대한 의무와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유사한 상황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고 여러 경로를 통해 적절한 처신과 판단의 기준들을 세워두는 것이 좋다. 연구윤리나 공학윤리의 지침서들은 이러한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상급자나 동료들과의 적절한 의사소통과 설득을 통해 기존의 방침을 바꾸거나 의무의 상충을 피할 수 있는 창조적인 대안들을 생각해 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사안의 심각성이 매우 큰데도 불구하고 관련된 동료나 상사, 기관이 문제 있는 방침을 그대로 고수하려 할 경우이다. 이 경우 과학기술인은 한 개인으로서 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사회적 해악을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되는 최악의 경우에 선택하게 되는 것이 바로 내부 고발(Whistle-blowing)이다. 내부 고발은 당사자에게 매우 큰 피해가 가는 행동이기 때문에 함부로 택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지만, 전문가로서 불가피한 경우에는 반드시 용기를 내어 선택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앞서 언급한 황우석 전 교수 팀의 연구원(내부 고발자)과 황우석 연구에 대해 침묵한 의사들은 큰 대조를 이룬다.

의무의 상충과 내부고발의 문제를 어느 정도라도 해소하기 위해서는 보다 상세하고 구체적인 지침과 관련 기관들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기업에서는 상황이 허용하는 한에서 개별 과학기술인이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는 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연구소나 대학 등에서는 기관윤리위원회나 옴부즈맨 제도와 같이 내부 고발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② 강력한 과학기술인 전문직 단체

과학기술인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보다 원활하고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과학기술인 전문직 단체가 필요하다. 앞서도 거듭 언급한 바와 같이 과학기술인들의 임무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기업이나 국가 연구소 등에 고용되어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과 같은 독립성을 보장받기 힘들다. 따라서 과학기술인 개인에게 사회적 책임을 온전히 떠맡기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윤리적으로 정당화되기도 힘들다. 전문직 단체는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인들의 독립성과 도덕적 우위를 지켜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인 전문직 단체들이 생겨나면, 과학기술인들은 한 기관에 고용된 동시에 이 단체들의 회원이 되고, 이 단체들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보다 강력하게 옹호할 수 있게 된다. 고용 기관이 부당한 요구를 할 때 전문직 단체의 보호를 받으며 이에 대응할 수 있고, 내부 고발이 필요한 경우에도 개인적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과학기술인 전문직 단체들은 과학기술인들을 대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강력한 도덕적 전문적 권위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권위에 근거하여 사회를 향해서는 과학기술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에 대한 중립적이고도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회원들에 대해서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물론, 과학기술인의 전문직 단체 역시 우리나라의 기존 전문직 단체들처럼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사회의 필요를 도외시하는 불량한 이익집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해당 전문인들이 사회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있지만, 회원들에 대해 일정한 구속력을 가지고 그들을 보호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도덕적 권위를 가지는 강력한 전문인 단체가 구성되면, 현대사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과학기술인들이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③ 윤리적 의무와 책임의 차등적 부여

원자폭탄을 만들 당시 미국의 여러 젊은 물리학도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궁극적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진행되는지를 알지 못한 채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과연 이들에게 원자폭탄 개발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이와 유사한 물음이 여러 명이 함께 진행하게 마련인 과학기술 프로젝트와 관련한 사회적 책임의 분배와 관련하여 제기될 수 있다. 장기적인 사회적 영향에 대해 단지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는 실천적인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따라서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그러한 책임을 정의롭게 분배하는 방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하급의 연구자보다는 상급 연구자가, 이론연구를 담당하는 과학기술인보다는 현실적 응용 단계의 개발을 맡은 이가, 개발의 초기 단계에 관여하는 사람보다는 상용화에 가까운 단계에 종사하는 과학기술인이 더욱 무거운 책임을 진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받아들인다면, 높은 지위를 가진 과학기술인은 좋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보다 뚜렷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구도와 지향점, 그리고 직간접적인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하위의 과학기술인보다 훨씬 더 깊은 숙고를 할 윤리적 의무를 가진다. 책임의 분배가 제도적으로 명시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인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할 때 이러한 원칙에 의거하여 자신이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가지는지를 대략적으로나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책임을 논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대다수의 과학기술인들이 피고용인의 입장에 있다는 사실이다. 의사나 법조인 같은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과는 달리 과학기술인은 기본적으로 기업이나 국가, 연구소에 고용되어 일정한 제약 하에서 연구 활동을 하게 된다. 연구의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없지 않지만, 과학기술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지면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무한정의 자유를 획득하기를 어렵다. 소속된 기관이 연구의 방향을 일정하게 조정하려 할 경우에 문제가 커지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3) 학술연구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새로운 이해

연구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속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사회가 그러한 필요를 자각하지 못한다면 연구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지라고 요구할 근거가 사라지는 셈이 된다. 위에서 제시한 여러 가지 대안과 제안들은 사회 구성원 전체가 학술연구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그 발전의 방향에 주목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인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은 결국 현대 사회의 맹목적인 과학기술 지상주의와 관련이 있다. 인문학자들이 사회적 책임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이유는 인문학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최소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지상주의는 현대 기술사회의 시민들로 하여금 과학기술인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만들고, 동시에 과학기술인들이 과학기술 발전의 당위성에 무작정 굴복하게 만들어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된다. 사회 구성원들이 인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으면 소통이 끊어지고, 인문학자들은 그 사회의 정신적 명맥을 잇는다는 긍지에 사로잡혀 사회의 도움을 당연시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행복과 반드시 같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 극단적인 경쟁을 통한 마구잡이식의 개발은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과학기술인들에게 그들의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인류 전체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그 방향성을 제대로 잡아나가기 위해서는 일반인들도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숙고하고, 나아가 자신들이 원하는 좋은 세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생각들을 발전시키고 공유해야 한다. 이러한 의식은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가능한데, 이를 위해서 사회는 인문학자들에게 소통의 장을 마련할 것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정착되면,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담당하는 것도, 그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