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발전을 추구함에 있어 암묵적인 전제가 되는 것은 그 발전이 인류에게 긍정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때 ‘긍정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서로 상반되는 연구결과나 연구태도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넓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연구자가 이러한 당위를 언제나 인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가 눈에 보이는 유용성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연구는 그 자체로도 큰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또 많은 경우에 한 연구에서 추구하는 단기적인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그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 무관심할 수도 있다.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이란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그 결과가 가지는 장기적이고 사회적인 영향력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연구 부정과 같이 미시적 차원에서 일어나는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방금 언급한 학문의 기여에 대한 암묵적 전제를 보다 명시적으로 의식하고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태도로, 거시적 차원의 문제이다.
이러한 관심은 사실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학술연구가 전적으로 연구자 개인이나 소수 지식인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물론 사회적 전통과 규범이 강력한 힘을 가져서 연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지만, 그것은 이단적 사고에 대한 징벌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을 물은 것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현대에 와서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학문과 연구의 자유가 상당부분 보장되고 그 중요성이 커진 탓이다. 다시 말해 과거와 같이 연구에 대해 사회적 영향력이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가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지식기반사회’, 혹은 ‘지식경제’와 같은 말들이 오늘날 학술연구가 가지는 중요성을 잘 드러내 준다.
그리하여 2007년 4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제정한 『과학기술인 윤리강령』은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과학기술인은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므로 전문직 종사자로서 책임 있는 연구 및 지적활동을 하여야 하며, 그 결과로 생산된 지식과 기술이 인간의 삶의 질과 복지 향상 및 환경보존에 기여하도록 할 책임이 있음을 인식한다."
이 강령은 과학기술인의 책임이 연구나 개발의 직접적이고도 단기적인 결과에 국한되지 않고 그 사회적 영향에까지 미쳐야 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이는 과학기술인에게 국한된 책임이라고 할 수 없고, 인문사회학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제기될 수 있다고 하겠다. 물론 위 강령에서는 사회적 책임의 한계가 어디인지, 그리고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과학기술인이(혹은 연구자가) 어떤 태도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까지 제시해 주고 있지 않다.
이 글에서는 먼저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이유를 보다 면밀히 검토하고, 이어서 그 책임을 규정하고 감당하는 데 있어 제기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도록 한다. 마지막으로는 연구자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와 관련된 제도적 장치, 사회적 인식 등에 대해서 차례로 생각해 본다.